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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론

해체주의 비평이란 무엇일까?

해제주의 비평이란?

해체주의자들의 기본적인 관점은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랑그를 공유하고 있다라고 해도 실제 발화인 빠롤의 측면에서 본다면 사람들의 환경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해서 그대로 원래 그 의도를 정확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해체주의자들은 의미는 고정되어있는게 아니라 그 근처에서 미묘하게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기표가 유희를 보인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표현은 기표와 기의간의 관계가 1대1로 매칭이 되지 않고, 계속해서 연쇄시키고, 딜레이 시킨다는 의미이다. 또한 해체주의자들은 언어는 내적인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게 아니라, 다른 기표와 기표의 차이 속에서만 명확하게 그 의미가 부각된다라고 본다. 이들은 차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설명을 하는데 차연이라는 것은 차이를 지연시킨다라는 의미이다.

언어라는 것은 서로 대립되는 이데올로기가 결합되어진 것이 언어라고 본다. 자크 데리다는 언어 자체가 사회적인 산물이다 보니깐 사회 문화적인 갈등, 가치관이 서로 경합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의미는 고정화되지 않고 계속 변한다고 말한다. 즉 언어는 다른 텍스트와 구분되는 특징을 가짐으로써 의미를 획득한다 라는 것이다. '존재 근거'라는 개념이 있다. '존재 근거'라는 것은 인간이 외부의 세계를 체험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근거를 의미한다. 플라톤은 이 존재근거를 이미 주어져 있는 보편적 조화인 코스모스 혹은 이데아로 보았으며, 데카르트는 이데아는 검증할 수 없으므로 ‘나’라는 주체에 대한 합리적 생각을 펼쳤다. 구조주의자는 내재되어 있는 최소한의 패턴 구조를 존재근거로 보지만, 반면에 해체주의자들은 '산종'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존재 근거에 대해 설명한다. 산종이라는 개념은 기표가 기의 근처에 존재하며, 틈새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언어는 정확히 내 의도에 그 지점에 딱 알맞게 고정되지 않고, 약간씩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낸다라는 것이다.

해체주의가 문학에서는 어떻게 보여질까?

문학에서의 해체주의자들은 '기표와 기의가 1대1로 대응하지 않는다' 라고 본다. 그 의미가 하나로 결정되는 경우는 없고, 산종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산종되고 차연되다 보니깐 문학예술 텍스트가 하나의 의미로만 고정될 수 없다 라는 것이 해체주의자들의 생각이다. 해체주의자들은 첫 번째로 의미자체가 하나로 고정화되지 않는다 라는것에 입각을 해서 문학예술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비결정적인 어떤 특성들을 승인을 해야된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단일한 이들이 추구하면 보편화된 독해 같은것들이 가지고 있는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훨씬 더 생산적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모든 언어는 대립되는 이데올로기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라고 보니깐 그것들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좀 더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knowledge is power'를 '아는 것이 힘이다' 라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지식은 권력이다' 이다. 지식은 뭘로 만들어 지는가? 언어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언어를 만드는 특정한 집단이 있고, 그것은 단 하나의 올바른 언어 사용법이라고 만드는 집단이고, 그 집단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사회구성원들에게 보편 타당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해체주의적 글쓰기는 무엇일까?

해체주의적 글쓰기에는 '패러디'와 '다시쓰기'가 있다. 기존의 정전이 있으면 그것이 만들어지고 그 의미를 지니게 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야 될 때가 있다. 이 경우 그 의미를 기존의 정전과 다르게 만드는 것에 성공하면 패러디이고, 단순히 배끼고 장난치는 것에 끝나면 단순 모방이 된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대안적인 방안을 만드려고 하게되면 좋은 패러디라고 볼 수 있다. 다시 쓰기도 비슷하다. 기존에 있던 중요한 텍스트를 다시 쓰는 방식을 말한다. 한 사회 문화권에 널리 알려져 있고, 가치 있고 그 사회구성원들은 누구나 다 알아야될 것으로 간주되고 어렸을때부터 교육을 통해서 인지하게 되는 문화가 있다. 이를 우리는 정전(cannon)이라고 한다. 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으로서 반복되어서 교육되는 것을 정전이라고 한다. 정전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 시대적인 맥락,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사회문화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에 캐논으로 형성되었다.

해체주의적 비평을 작품속에서 알아보자

오현종의 <수족관 속의 인어가>라는 작품은 정전으로 널리 알려진 인어공주 이야기를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보고 있다. 오현종은 이 작품에서 인어공주 이야기가 현재에도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즉 희생적인 사랑이나 판타지적인 속성들이 여전히 유효한 가치라는 것에 공감을 얻기 힘들다라고 판단을 하고, 그 자리에 오히려 냉혹한 현실을 대입시켜서 인어공주의 삶이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를 형상화한 텍스트이다. 오현종은 또한 인어공주 외에 다른 정전들을 넣고 있다. 예를 들어 콩쥐팥쥐 얘기도 들어가 있고, 알라딘 램프 이야기도 나오고 한다.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들과는 다르게 배치하면서 오히려 2000년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패러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패러디를 통해서 우리가 어렸을때부터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고 접했던 정전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 같은 것들을 수행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텍스트로 간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