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평론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하여 알아보자

탈식민주의라는 개념은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끈다. 식민주의라는 것이 단순히 정치적인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측면 즉, 인간의 정체성, 개개인의 문화적인 정체성, 아이덴티티 이런 부분들에까지 식민주의가 영향을 끼치고, 그것까지를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식민성을 극복하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적인 측면이나 무의식적인 측면, 개개인에게 내면화 되어있는 정체성의 측면에서 식민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

탈식민주의자들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수 있게 된 상황이라고 해서 그것을 식민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의식적 측면까지 즉 문화적인 측면에서 내재화되어 있는 식민지에서의 성격까지를 비판할 수 있을 때 그때 진정한 의미의 탈식민이 가능했다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들은 제국주의가 가했던 방식과 동일한 방식을 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식민주의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이데올로기가 있기 때문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식민지배란?

식민 지배의 시작은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두고 판단한다. 이를 유럽중심주의라고 한다. 유럽에서의 보편적인 가치를 식민지 국가들에게 절대화하면서 '너희들에게 이 가치를 알려주겠어' 라고 하면서 식민지화 시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서구에서 제국주의가 들어갈 때 문화적인 측면을 담당하고 있는 기독교와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의사가 먼저 들어간다. 왜냐하면 종교적 가치와 의학적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를 기준으로 해서 동양으로 대표되는 비서구지역을 편협한 방식으로 재단하는 것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오리엔탈리즘에서는 제국은 모든 식민 국가를 타자화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타자화라는 것은 자신들과 다른 속성을 지닌 부류 혹은 계층을 의미한다. 즉 제국의 시선에서는 식민지 전체 문화는 주체가 아니라 타자라고 본다. 이 때문에 식민지들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문화나 그들만의 지식체계들은 부정이 되고 제국이 가지고 있는 표준화된 것으로 기존의 것을 재단하고 없애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어진다. 식민지 하에서 형성된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인 정신분석학과는 조금 다른 특성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문화적인 측면, 무의식적인 측면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치적 측면, 제도적 측면을 통해 식민지를 끝내는 것은 쉽고 간단하다. 하지만 문화적인 측면이나 무의식적인 측면, 개개인에게 내면화 되어있는 정체성의 측면에서 식민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식민지 하에서의 주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특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아이가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 단위에서 아버지를 통해서 법, 질서, 문화, 규범들을 익힌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식민지 하에서는 그 법이 자신과 생물학적으로 인연이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식민지이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이나 다름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방법은 아빠를 찾아간다. 두 번째 방법은 자기 자신이 아빠가 되는 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이라면은 새로운 아버지, 아마도 제국주의 국가를 자신의 아버지로 승인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의 경우에는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얘기가 될 것이다. 탈식민주의자들은 식민지 하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는 혼종적인 정체성을 지닌다. 자신이 태어나고 토착적인 문화나 아이덴티티가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하면서 문화적이거나 교육을 통해서 얻게 된 지적인 측면, 이데올로기 측면으로 형성 된 두가지가 섞여가지고 잡종이 만들어진다. 더불어 모방의 양상도 나타난다. 이때는 보통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롤모델이 없는 상태다. 이 때 롤모델로서 새로운 아빠인 제국을 통해서 배우던지, 내가 아빠가 되야지라는 생각으로 나뉠 수 있다. 따라서 식민주의 주체는 제국의 문화, 지성을 흡수하기 때문에 모방할 수 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는 식민지기 때문에 두가지 사회에서의 모순이나 갈등이 발생하고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모방을 하지 말고 원래 있었던 전통적인 민족문화의 정책성을 복원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맞다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은 과도할 정도로 토착문화를 강조하는 성격이 강하다. 근거는 없지만, 우리가 제국의 문화보다 뛰어난 토착문화를 가지고 있다라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교육하고 과시하는 형태가 된다. 근데 이게 보통의 경우에는 한국이라면 70년대까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초반에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임무로서의 기능을 지녔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엄청나게 확장되다보면 배타적인 방식으로 즉 제국주의와 다를바 없는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을수 있지만 했던 행위를 동일하게 반복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광부, 베트남전 파병이 있을 수 있다. 이는 한치도 탈식민이 이루어지지 않는 식민주의적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제국을 욕하면서 제국을 닮아가는 것도 모방으로 볼 수 있다. 인도에서 '서발턴'이라고 하는 계급이 있다. 이를 하층계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제국주의적 프레임과 민족주의적 프레임 양쪽에서 억압당하고 배제당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이 탈식민주의의 큰 과제이다. 서발턴을 한국으로 적응시키면 일본과 한국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들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을 작품 분석을 통해 확인해보자

허준의 잔등은 귀환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해방 이전까지 다른 곳에서 생활을 하다가 해방 이후 우리나라로 다시 들어오는 구성이다. 이 소설에서는 보통 소설과는 다르게 '우리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모방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소년의 행위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인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했던 것과 같이 해방 이후 과도할 정도의 민족주의가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데, 타당하지 않은 방향으로 분출되었을 경우에 폭력의 반복이 있을 수 있다. 더불어 혼종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방이'라고 나오는 인물의 외형적인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는다. 그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섞여 있는 상태로 등장한다. 서발턴 관련해서는 가도오라는 존재, 혹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여성이나 아이들을 통해 허준은 표현하고 있다.

즉 허준의 잔등은 내재되어있는 모방의 양상을 성찰하고,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양쪽에서 추방된 서발턴이라는 존재를 복원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